1. 머리말
2. 七支刀 銘文의 판독
3. 七支刀 銘文의 해석
4. 七支刀 제작 당시의 韓日關係
5. 맺음말
요약
本考는 韓日古代史에 있어서 쟁점이 되고 있는 石上神宮 七支刀의 銘文을 재검토하여 4세기말~5세기초 당시 한반도와 일본 열도와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七支刀에 관한 연구는 銘文에 나오는 연호를 東晉의 369년인 것으로 보고 『日本書紀』 神功紀에 나오는 七支刀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여 4세기 중엽에 제작, 전달된 것으로 보아 왔다. 이에 백제의 헌상설, 백제의 하사설, 동진의 하사설 등 한일 양국 하계의 다양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七支刀의 x-선 촬영 결과에서 나타난 銘文을 재판독하면 그동안 ‘泰口四年五月十六日丙午’로 보았던 七支刀의 제작일을 十一月十六日로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11월 16일이 丙午의 日干支를 가진 연도를 산출하여 七支刀의 銘文을 재해석하면 七支刀는 369년이 아니라 408년 백제의 支王 4년 11월16일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奇生聖音’의 銘文은 ‘聖音으로 진귀하게 혹은 신성하게 태어나다’로 해석할 수 있어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384년 이래 20여년이 지난 408년경 부처님의 가호로 왕세자가 태어났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의 七支刀 명문 재해석 결과, 그동안 七支刀를 『日本書紀』 神功紀에 근거하여 369년 백제에서 제작되어 372년 백제가 일본에 헌상했다는 설은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七支刀는 銘文에서 백제가 泰口라는 연호를 썼던 것, 그리고 銘文의 侯王은 백제에 신속하고 있던 侯王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百濟王世子인 久爾辛이 진귀하게 태어난 것을 계기로 倭王에게 하사된 칼로 볼 수 있다. 즉, 한반도 내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치열한 전투를 하던 408년 11월 16일 七支刀가 제작되어 이듬해인 409년 『三國史記』 支王 5년에 보이는 倭國의 사신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