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사건의 역사적 배경
3. 사건의 발생과 수습
4. 암살의 배후
5. 맺음말
요약
서기 475년,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백제의 도읍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었다. 아우 문주왕이 즉위해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며 국력을 회복하려 애썼지만 3년 만에 암살되었고, 문주왕의 아들 삼근왕도 즉위 3년째 15세의 나이로 죽었다.
동성왕은 삼근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곤지는 이미 문주왕을 돕다가 암살된 뒤였으며, 바다건너 왜국에서 나고 자라 국내에는 아무런 정치기반도 없던 10세 안팎의 어린나이였다. 처음에는 유력귀족에게 이를 맡기고 사냥등에만 몰두하는 듯하더니 20세 무렵에 이르자 정력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동성왕이 열심히 일할수록 유력한 신하들과 갈등이 생겼다.
서기 501년, 동성왕이 죽었다. 『三國史記』에 따르면, 새로운 도읍으로 고심하던 사비에서 겨울사냥을 하던 중 자객에게 살해된 것이다. 배다른 언니인 무령왕이 왕위를 잇고, 衛士佐平 苩加가 암살배후로 지목되었다. 동성왕이 오랜 측근인 백가를 가림성으로 파견하자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日本書紀』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동성왕이 無道하므로 나라사람들이 제거하고 무령왕을 세웠다는 것이다.
동성왕은 대체 누구에게 암살되었을까? 측근인 백가였을까, 정체불명의 정적들이었을까? 백가는 억울한 희생양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령왕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전혀 저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성왕의 죽음을 통해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목이 베인 뒤 백강에 던져졌다. 정치권력에 얽매이던 시적의 역사기록은 종종 사실을 왜곡했는데, 동성왕의 죽음에 대한 『삼국사기』기록이 그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