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삼국유사』 '무왕 조'의 내용 검토
1. 탄생 신화
2. 혼인 민담
3. 미륵사 창건 전설
III. '무왕 조' 설화의 변형 과정
1. 민담의 변형과 탄생 신화의 결합
2. 서동왕 민담과 미륵사 창건 전설의 결합
IV. 맺음말
요약
『삼국유사』 무왕조의 설화는 3개의 이야기가 합쳐진 것이다. 자국 왕에 대한 당연한 관심의 고조와 존경심에 의해 민담은 조연이었던 서동을 주인공으로 하는 구성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무왕의 탄생신화를 가져와, 민담에 있던 생업과 관련하여 얻은 이름일 서동을 아명으로 하였다고 하며 넣어 연결을 시도하였다. 이 민담은 나․제 두 나라 국왕을 실물(진평왕)과 상징적 인물(서동)로 등장시켜 현실감 있고 긴장감 있는 사실 같은 설화로 유포되어 생명력을 발하게 되었다.
무왕 익산 경영의 핵심 사업의 하나였을 미륵사가 건축되고 20년 내외가 지나서 백제는 멸망하였다(660). 이에 백제계 주민들은 위기에 처한 고장의 정체성과 역사를 재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잊지 않고 전하기 위해, 다소 성격이 다른 이야기를 약간의 구성상의 손질을 가해 하나처럼 엮어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 이야기에 있던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다시 출현시키고 ‘입국마한’의 역사과정을 삽입하여 설화의 연결을 시도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통합결과 이 전체 설화의 성격이 달리 보이게 되었다. 미륵사의 창건 연기설화로 이해될 소지가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이 설화의 전승 보존을 위해서 결과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백제계 금마저 일대 주민들이 설화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향유 전승하였다고 보이나, 통일신라기 신라인의 손에 의해 문헌상의 편집이 있었던 흔적이 없지 않다. 일연이 ‘무왕조’에 언급한 그 ‘고본’의 편찬과 연관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무왕조’에서는 일연의 윤색과 정리가 가미되었다. ‘무강왕’을 ‘무왕’으로 교감하고 ‘입국마한’을 산삭하여 ‘역사화’를 위한 그의 윤색 강도가 높았을 것 같은 감을 주지만 설화의 구성을 바꾸는 정도는 아니었다. 이 ‘무왕조’의 설화는 민간에 유포된 민담에 일부 실재 인물에 설정되며 구성이 변하게 되어 허구와 사실의 계선이 모호하게 되었다. 그런데 혼인설화에서 말해진 내용은 ‘내복에 산다’계 설화의 기본 구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사실로부터의 설화 생성 가능성을 높게 생각할 수는 없는 편이다. 설화의 배경이나 환경이라는 점에서 7세기 나․제간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지만 사실 자체가 설화로 말해진 것은 아니다. 이 ‘무왕조’에 보이는 전체 설화는 통일신라기에, 주인공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앞의 서동왕 민담과 뒤의 미륵사 전설이 다시 합쳐진 것이다. 민담과 전설은 그 성격에 차이가 있고 사실의 반영 정도가 달라서 합쳐진 전체 설화에서 사실성을 분석해 내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된 면이 있다. 따라서 이 ‘무왕조’를 자료로 한 역사 연구는 자칫 설화의 역사화란 원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음에 한층 유념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