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邑(王京)은 왕이 살고 있는 王城과 왕성 주변에 형성된 정치·신분적 중심구역인 王都를 포함한 광역의 지역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溫祚王 14년의 遷都에 대한 연구는 도읍 전체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遷都地에 대한 위치비정 문제에 천착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물론 천도 연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천도의 배경과 의미를 고찰하는데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천도는 일반적인 천도와는 달리 근거리에서 이루어져 도읍 자체가 이동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도읍의 중추를 이루는 지역이 왕성과 왕도이므로, 천도가 이들 중심지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근거리 천도는 원거리 천도에 비해 新·舊 중심지간의 연속성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현재 풍납토성 내부의 동남편에 위치하는 현대아파트 부지에서는 3중의 환호가 확인되었다. 이것은 풍납토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토성 축조 이전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온조왕 14년의 천도는 이곳 3중 환호에 중심을 두고 있던 백제가 주변에 풍납토성을 축조하고 왕성을 확대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온조왕은 먼저 천도지를 결정하고 사전 정지 조치를 취했으며,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마한에 미리 천도 사실을 알리는 등 계획적이고 구체적으로 천도를 진행시켜 나갔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천도 목적은 말갈과 낙랑 등의 외침으로부터 왕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았으며 주변에는 垓子를 설치하는 등 방어력의 극대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천도는 백제의 정치적 성장과 왕권 강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3중 환호로는 강화된 왕의 위상을 표현하기 어려웠으므로, 왕의 권위에 어울리는 왕성의 건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천도는 철저한 계획과 통제 하에 진행되었다. 왕성의 축조는 물론이고, 왕성 내부와 주변의 왕도에도 공간구획과 같은 계획적 조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온조왕 14년의 천도는 이를 계기로 왕성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동시에 왕성과 왕도에 대한 계획적인 건설과 경영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