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 서동의 로맨스
Ⅲ. 미륵사 창건연기 설화 성립의 역사적 배경
Ⅳ. 薯童과 무령왕 Ⅴ. 武王의 出自
Ⅵ. 무왕대의 對신라관계
Ⅶ. 眞平王과 武王代의 양국 관계
Ⅷ. 백제 · 신라 혼인동맹 Ⅸ. 創寺緣起 埋池 說話
Ⅹ. 武康王 XI. 益山 別都說
XII. 미륵사 西塔 舍利奉安記
XIII. 威德王 XIV. 맺음말
요약
《삼국유사》에 나오는 마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익산 미륵사 창건연기 설화로 이야기는 통일신라 시대의 유명한 소설이었다고 보았다. 바보 온달 이야기, 조신대사 이야기와 함께 한국 소설사에 있어서 고대소설의 3대 소설이라 보았다. 이 설화에 나오는 무왕은 보각국사 일연이 전래되던 무강왕의 이야기를 백제에 무강왕이 없어 무왕으로 개작한 것이란 것을 밝히려 했다. 서동은 백제 牟大왕인 동성왕이라고 보았고, 선화공주, 선화부인이란 왕비는 동성왕비로 시집간 신라 공주로 이벌찬 비조부의 딸이며 미륵사 창건왕인 무령왕과 관계된 왕비로 양왕대의 왕비로 추정된다. 枳慕蜜地 즉, 金馬渚 지금 익산에 별도를 건설한 왕을 무령왕으로 보았다. 《관세음응험기》에 나오는 武廣王을 武康王의 오기로 보며 무강왕은 무령왕의 다른 이름이라고 간주하였다. 미륵사를 창건한 왕은 익산에 별도를 건설한 무령왕이 京都건설의 일환으로 지었다고 추론했다. 무령왕과 선화부인이 창건한 미륵사는 중탑인 목탑과 중원이라고 보았다.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사리봉안기>에 절을 조성한 사택왕후를 위덕왕의 왕후로 보과 己亥年이란 간지를 위덕왕 26년 579년으로 비정했다. 사탁왕후가 창건한 사원은 서원 서탑이라 보았다. 그 후 동원동탑을 건립한 것은 한 시대가 지난 무왕대 전후로 간주된다. 무왕과 진평왕대의 친선교류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무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불공대천지 원수로 시종 신라 정벌에 渾身盡力한 당시의 역사와 전혀 맞지 않아 있을 수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무왕은 미천한 과부의 아들로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며, 무왕은 법왕의 태자로 법왕을 이어 즉위한 정상적인 즉위다. 창사 연기설화의 주인공 무령왕과 동성와의 관계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제2자란 《삼국사기》의 기사는 오류이며, 《일본서기》의 기사에 신빙성을 주어 무령왕은 동성왕의 이복형인 異母형제간이라 추론했다. 요컨대 설화의 주인공인 마동은 동성왕이며 창사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무광왕, 무강왕, 무령왕은 같은 왕이며, 무령왕의 별호가 무강왕이며 무광왕은 오기란 것을 밝혔다. 그러나 미륵사 창건연기 설화는 설화로서 그 의의를 가지며 역사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해도 설화로서의 가치는 상실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한 민속문화 설화문화 유산으로서 생명력을 가진다. 이에 바탕한 민속행사는 그대로 하나의 문화행사로 뜻이 있다 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