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의 파견 주체, 출현 배경, 그리고 그 성격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주제들이다. 모두 ‘야마토 왕권’의 관련성 여부가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파견 주체에 대해서는 수정된 ‘야마토 왕권 파견설’이 대세인데, 야마토 왕권이 ‘임나일본부’를 파견하고 제왜를 통할한 주체로 보았다. 그러나 일찍이 이와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임나일본부’와 야마토 왕권을 분리하여 백제 혹은 제왜ㆍ재지왜인 중심으로 접근한 백제 파견설, 제왜파견(출자) 재지왜인설, 기타설 등이 제기되었다.
‘임나일본부’의 파견 주체에 대한 각각의 창의적인 시각이 돋보이지만, 어느 견해도 정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임나일본부’ 자료의 근간인 『백제본기』와 『일본서기』는 후대 천황제 관념 하에 야마토 왕권 중심으로 편찬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남가라 소멸과 ‘磐井의 亂’ 이후 ‘임나일본부’ 활동기인 계체ㆍ흠명대에 신라와 백제에 파견된 ‘왜사’를 야마토 왕권과 무관하게 보는 논자는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야마토 왕권 파견설을 비판한 제설의 의문점이 있다.
‘임나일본부’는 『백제본기』와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출자의 혼란을 가져오고, 파견과 귀국 과정도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야마토 왕권 파견설을 비판한 제설은 야마토 왕권과 ‘임나일본부’가 직접 관련된 기록이 없다는 점을 결정적인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백제본기』의 특징인 백제 중심의 ‘가야부용관’과 자료 누락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고, ‘임나일본부’ 중심으로 전개된 백제-안라-신라-야마토 왕권 4자 관계의 실상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검토하지 않은 약점을 노정했다.
5세기대 제왜 지방호족이 주도한 ‘지역정권’의 독자적인 대 한반도 교섭은 인정된다. 그러나 ‘임나일본부’가 활동한 6세기 전반은 한반도 남부지역과 일본열도 공히 고대국가의 발전기로서, 두 지역 간의 외교관계는 대표 정치체인 신라ㆍ백제ㆍ가야와 야마토 왕권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동일한 시기에 활동한 ‘임나일본부’와 ‘재안라제왜신등’ 역시 야마토 왕권과 관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임나일본부’는 출자의 다양성과 재지성 그리고 친신라 외교활동 등의 특징을 가졌지만, 일단 남가라 소멸 이후 변화된 야마토 왕권의 대 한반도 외교의 ‘표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