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전래」에 대해서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불상과 보살상 등이 그려진 한 장의 종이 혹은 작은 불상을 백제에서 일본으로 가지고 가, 자기 집에 안치 해 놓고 배례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방식의 불교를 필자는 「사택불교(私宅佛敎)」라 부르고 있다. 두 번째는 「가람불교(伽藍佛敎)」이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탑을 중심으로 불사법회를 하는 금당, 승려가 학문수행을 하는 강당등의 칠당가람과, 불법이 설명되어 있는 경전 그리고 승려가 갖추어진 불교이다. 결국 佛․法․僧의 「三宝」를 말하는 것이다. 「가람불교」에는 가람을 세우는 기술자들이 필요하고 불사법회를 할 승려가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가람불교」를 유지하고 운영시키기 위해 재정조치를 강구하는 시주가 있어야 한다. 나는 불교전래의 「불교」를 「사택불교」와 「가람불교」로 구별하는데, 「사택불교」가 538년 이전에 큐우슈우로 전래됐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불상을 그린 한 장의 종이 혹은 인형과 같은 불상을 가지고 가, 개인이 자기 집에서 몰래 숭배하는 것으로 「사택불교」가 성립되었음을 인정된다. 그러나 「가람불교」가 6세기 또는 그 이전에 큐우슈우로 전래됐다고는 할 수 없다. 큐우슈우 지방의 사원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에 의거,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다. 큐우슈우에서 가람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7세기 후반이다. 야마또(大和), 가와찌(河內)를 중심으로 하는 가나이(畿內)와 그 주변에는 7세기 전반, 즉 아스카(飛鳥)시대에 절이 건축되기 시작한다. 큐우슈우에 있어서 「가람불교」가 성립한 것은 야마또와 가와찌의 기나이보다 반세기 가량 늦은 것으로 볼 수 있다. 欽明天皇시대, 또는 그 이전에 큐우슈우에 「사택불교」가 전래됐다고 하는 견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가람불교」가 전래됐다고 하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