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의 祭祀行事는 몇 가지 단계로 구분되어 파악할 수 있으며, 이는 백제의 발전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이러한 과정을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께는 十濟라고 불리웠다는 시기에 걸맞는 溫祚王代로서 아마도 미추홀을 아우른 단계 정도의 미미한 國邑단계로 여겨진다. 이 때는 祭天이 처음 성립되는 단계로서 百濟의 王은 國邑의 天君이라는 제천행사의 主宰者로서 탄생되었으나, 아직 馬韓社會에서 盟主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닌 시기였다고 여겨진다. 두 번째의 단계는 百濟가 한강유역의 여러 國邑들의 孟州로서 馬韓의 다른 國邑들을 實力에 의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상태에 돌입한 伯濟國의 단계라 여겨진다. 이제 伯濟國은 여러 國邑들의 맏이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단계에서 군사행동에 있어서도 中心的 地位를 차지한 古爾王代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네 번째 단계는 全國에 걸쳐서 五方制가 실시되고, 都內가 五部五卷制가 실시되었던 단계로서, 이때는 제천의 행사내용이 구분되어진 시기라고 여겨진다.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어진 단계이며, 王位는 확실하게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이 중국의 기록에 남아 있다고 믿어진다. 中國의 개념으로는 중국의 天子만이 제천을 행할 수 있는 存在요, 나머지 四方의 諸侯國은 禮法을 넘어서서 祭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思考의 소유자인 中國人의 눈에는 百濟에서 행하여진 제천이 특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은 당연하며, 그러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百濟가 행한 祭天祀地는 高句麗나 扶餘, 그리고 濊에서 행하여졌다는 제천과 韓에서 행한 제천과 함께 古代의 우리 민족의 조상인 濊․貊․韓에 공통된 일면이 있으나, 그것이 王朝 나름대로의 통치조직의 구성원리와 짝지어지는 단계로 발전한 것에서 보다 체계적인 사상체계로 진전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점이 百濟의 崇天思想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수 있으며, 百濟人이 그들의 王을 頂点으로 하여 별도의 우주관․세계관을 형성하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라 할 수 있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