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유교의 傳來와 수용
3. 고구려의 유학
4. 백제의 유학
5. 신라의 유학
6. 맺는 말
요약
성읍국가 혹은 부족연맹 단계에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삼국시대에는 전통적인 원시종교사상에 바탕을 둔 이념과 제도로써는 더 이상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한 정치이념과 제도 그리고 각종 생활 규범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한자의 사용이 보편화된 당시에 원시 종교적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대 지성을 갖춘 지도자층에서 이러한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유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경전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노력하였다. 삼국은 각각 전통적인 원시 종교적 체계를 바탕으로 삼아 광범한 유교사상을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수용하였다. 당시 유학사상은 토착한 원시종교 및 불교, 도교 등과 교섭하면서 공존하였다. 삼국은 유학을 활용하여 공동체적 규범을 유교 규범으로 체계화시키고, 원시적 습속에서 탈피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정제된 사회로 발전시켰다. 고구려에서는 초기부터 정치에 활용되어 유교 관료의 등용과 고구려식 화이관의 제시, 고구려식의 華夷觀, 문무겸전의 이념과 제왕의 덕으로 仁, 신하의 덕으로 忠의 관념이 정착되었다. 백제에서는 중국 특히 南朝의 梁 및 일본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하여 유학에 대한 연구가 국제성을 띠었고, 각종 의례와 관료제도를 정비하고 전문분야로 나누어 수준 높은 연구가 행해졌다. 신라에서는 발전이 늦었으나 전통을 잘 유지하며 특징있게 수용하여 安民의 정치이념과 忠道의 윤리관이 확립되어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太學등의 官學制度가 확립된 이후에는 유학사상에 대한 實用 실천적 단계를 넘어서 이론적 탐구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