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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한성기 백제와 가야 관계(5世紀 漢城期 百濟와 加耶 關係)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9호
  • 저자 김규운
  • 발행일 2011년 10월
  • 게재지 중앙고고연구
  • 발행처 중앙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연구사 검토
Ⅲ. 자료 분석
1. 백제권역내의 가야 토기
2. 가야권역내의 백제계 유물
Ⅳ. 한성기 백제와 가야의 관계
1. 4세기
2. 5세기
3. 475년의 획기
Ⅴ. 맺음말

요약

지금까지 백제와 가야 관계에 대한 연구는 『日本書紀』 등의 문헌과 고고자료를 분석한 4세기와 6세기 전중반의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구 경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5세기대의 백제와 가야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5세기대의 한성기 백제와 가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고고자료를 분석해 그 실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대가야권역에서 출토되는 백제계 유물은 주로 금공품으로, 이를 통해 정치적인 교섭을 행하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소가야권역에서 출토되는 백제계 유물은 대부분 토기이고, 백제권역에서 출토되는 가야계 유물 역시 대부분 소가야양식 토기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토기들은 모두 백제의 남부지역 진출루트 또는 소가야와의 교섭 루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백제와 소가야의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백제와 소가야와의 교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남해안을 이용하면서 왜와 교섭을 행하였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백제의 지배지역이 아닌 고흥지역에서 길두리 안동고분과 같은 무덤이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내륙 교섭로와 남해안의 항로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안동고분의 피장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동시에 고창 봉덕리고분과 같이 백제 중앙의 간접지배를 받으면서 영산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후 백제가 475년 한성함락으로 인해 약해지면서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소가야도 쇠퇴하게 된다. 이를 틈타 대가야가 호남 동부지역으로 진출하여 임나사현등을 대가야권역으로 포섭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았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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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처중앙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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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간년도 
    • 게제지중앙고고연구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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