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백제시대 각 시기별 영역의 변천과 그에 따른 지방제도의 변화모습을 간략하게 검토하고, 나아가 國家權力의 지방침투 양상을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한성기는 고이왕대 및 근초고왕대에 영역확대의 전기가 되었으며, 근초고왕대 이미 남해안 일대까지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됨으로써 地方化가 이루어졌다. 국가권력의 지방침투는 고이왕대 이전에는 재지수장층을 통해 間接的으로 이루어졌고, 고이왕대부터 제도적인 차원에서 지방에 대한 지배가 관철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근초고왕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와 영역의 확정에 의해 지방관의 파견을 통한 直接支配가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한성기 국가권력의 지방침투는 순행과 진휼, 그리고 역역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성후기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한 정치적 변동 속에서 지방지배의 한계가 나타남으로써 주요지역에 대한 威勢品의 賜與를 통해 지방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일부지역에서는 在地的 전통이 지속되고 있어 한성기 지방지배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웅진기에는 한강유역의 상실로 북방지역의 상당부분이 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지방의 재편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웅진기에는 남부지역에 대한 지배에 주력하였다. 동성왕대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함에 따라 지방에 대한 강력한 지배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무령왕대에는 주민들에 대한 직접지배를 실현해 나갔다. 국가권력은 담로체제 하에 王·侯號를 부여받은 地方官과 중앙귀족화한 地方勢力을 통해 직접적으로 침투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의 문화적 전통성은 약화되었다.
사비기에는 보다 체계화된 方郡城 체제로의 전환과 地方官에 의한 지방지배가 확립되었다. 방군성으로 편제된 지역은 백제가 신라에 병합된 이후 지방제도로 편제된 웅주·전주·무주 일원에 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중앙에서 파견된 郡令(郡將)·城主에 의해 통제되었다. 그렇지만 재지세력 중 유력한 귀족세력은 중앙의 관등에 편제되어 지방관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