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연기출토 불비상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의 성격과 최근에 조사된 고고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백제시대 연기지역에 재지기반을 두고 있었던 귀족세력의 성격을 살펴보고, 이들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양상을 재지세력이었던 身次와 大姓八族의 하나였던 眞氏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불비명을 살펴보면 등장인물들의 대다수가 신라관등을 칭한다. 그런데 신차라는 인물만이 달솔이란 백제 관등을 칭하고 있다. 또한 백제 대성8족 중 하나인 진씨가 대사의 관등을 띠고 신차 다음에 기록되어 당시 변화된 시대적 상황과 귀족세력의 위상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조성과정에서 유력한 재지세력의 존재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는 수촌리유적과의 비교를 통해 외부로부터 유입된 세력에 의해 조영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세력은 진씨세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음은 재지세력의 성격과 진씨의 동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불비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라로부터 관등만 수여받았으며, 또한 이들은 백제시대에도 지방관의 성격이었다기 보다는 대부분 관등만 소지했던 재지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달솔을 칭한 신차는 연기지역에서 제일 유력한 재지세력으로 중앙 관등에 편제되어 대대로 가문에 의해 달솔의 관등을 받았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인물들이 신라 관등을 칭하는 상황에서도 그가 백제 관등을 칭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진씨는 연기지역으로 재지기반을 옮겼음에도 왕비족으로서의 고위관등에 편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상과 지역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해구 반란시 진씨소유의 사병과 연기지역 재지세력들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진압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660년 멸망과정에서 정치적 기반이 소멸됨으로써 연기지역에서의 사회적 위상도 약화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연기지역을 전통적인 재지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세력들의 영향력이 다시 회복되었을 것이다. 신라는 통일 이후 지역사회의 안정을 위해 재지세력들을 활용하였으며, 이들은 신라의 국가체제로 편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따라서 불비상에 보이는 신라 관등은 이와 같은 과정에서 부여된 것이며, 신차․진씨 등의 존재는 전통적인 재지세력이 지역사회에서 다시 영향력을 회복하는 사회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