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기 百濟와 加耶諸國들 간의 관계를 알아 볼 수 있는 文獻 史料는 많지 않지만, 다행히 『日本書紀』의 神功紀와 繼體,欽明紀에는 그 대략을 살펴 볼 수 있는 記事들이 있다. 그러나 『日本書紀』는 편찬 당시 “古代日本 天皇主義史觀”에 의해 심하게 歪曲되었기 때문에 사료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本稿에서는 神功紀 記事의 연대를 2周甲 내려서 보았으며, 행동의 주체도 倭가 아닌 百濟로 보는 이른바 “主體修訂論”에 따라 해석하였다. 神功紀의 내용은 4세기 후반 백제가 가야제국들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내용은 欽明紀에 보이는 백제 聖王의 언급대로 “화친을 맺고 兄弟나 子弟父兄으로 알았다”고 하는 것이 당시의 실상으로 파악하였다.
繼體紀에 따르면 백제는 6세기 전반 已汶, 帶沙지역으로 진출한다. 기존연구들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두 지역에 대한 位置의 比定이었다. 본고에서는 已汶을 同名異地로 파악하여, 『翰苑』에 보이는 基汶은 섬진강 유역으로, 『新撰姓氏』에서의 已汶은 낙동강 중류유역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보았다. 다만 繼體紀의 已汶은 『翰苑』에 보이는 基汶과 동일지역으로 판단하였고 帶沙는 河東지역으로 비정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6세기 대백제의 가야 진출 루트가 섬진강 유역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