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옹산성의 위치와 지정학적 의미
III. 옹산성 전투 이전 백제 지역의 정세
IV. 옹산성 전투의 전개와 결과
V. 맺음말
요약
옹산성 전투는 백제부흥운동세력이 확장되고, 당의 고구려 원정 실패에 따라 백제와 당의 외교적 교섭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신라의 공격이다. 당시 옹산성(계족산성)은 상주-보은-문의-청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선산-황간-옥천-대전-공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상하로 견제할 수 있었다. 특히 후자의 교통로는 백제부흥기 웅진도로서 신라가 당 주둔군을 지원하던 루트였기에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에 신라는 서기 661년 9월 27일에 백제 부흥군이 주둔한 옹산성을 빼앗고, 다시 인근의 우술성마저 함락시켜 부흥군에게 큰 타격을 입힘과 도시에 이를 통해 백제와 당의 유착을 방지하고 다시 나․당 동맹의 관계를 실력 행사로 재확인한 것이다.
한편, 부흥세력에게 옹산성 전투는 풍왕 정권의 수립(661년 9월)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려는 국가 재건 일정을 송두리째 흩트려놓는 사건이었다. 당시 백제는 부여풍의 귀환과 등극이라는 일정과 함께 지역 세력의 유기적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국가 부흥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런데 백제와 당의 교섭 진행과 그에 따른 신라의 반발은 유기적 지역 네트워크가 공고해지기 전에 한 부분을 와해시켰고, 나아가 지역 부흥세력의 일부가 다시 신라에 투항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일탈마저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옹산성 전투는 신라에게 백제와 당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다시 나․당 연합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백제에게는 부흥세력의 유기적 결속을 방해하여 국가 재건의 미래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는 사건으로써 도침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파장까지 초래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