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이성산성에서 신라 목간이 출토되었고 이는 종래 신라 금석문에 나오는 표기 체제와 다른 방식의 직명이 나오고 있어 이에 대한 소개와 아울러 인명표기 문제를 중심으로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성산성의 목간에서 인명표기와 관련된 부분은 측면부분이다. 이는 수성도사와 촌주로 나누어진다. 수성도사와 촌주가 각각 직명이므로 측면에서는 ‘前南漢城’ 부분이 남게 된다. 이 나머지 부분에서 前자에 주목해보면 이 역시 직명일 가능성이 크다. 통일 전의 신라에 있어 지명이 붙는 직명은 군주, 사대등, 당주, 도사 등이 있다. 이들 직명은 기재 순서상 촌주의 뒤란 점에서 그 가능성이 적다. 혹시 前자에 근거할 때 현직이 아닌 전직이기 때문에 도사 등이 올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지명이 붙는 새로운 직명이 이 때 새로 생겼을 지도 모른다.
목간 측면에 3사람의 직명이 나열되었을 때 무진년이 608년인지 668년인지 궁금하다. 목간 원보고자는 무진년을 608년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591년 작성된 남산신성비 제1비에는 직명+출신지명+인명+관등명 순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 남산신성비의 인명 표기와 목간의 인명 표기사에 큰 차이가 있다. 595년 작성된 어숙지술간묘 묘지명에서도 직명보다 술간이란 외위명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목간의 연대를 668년으로 보는 쪽이 더 개연성이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