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한성의 함락과 목만치의 도왜
III. 곤지와 왜왕권
IV. 동성왕의 즉위와 대왜 동맹
V. 무령왕의 대왜 외교와 서부가야 경략
VI. 결어
요약
웅진시대의 백제의 대왜동맹은 고구려에 의한 한성의 함락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중에서 강화되었다. 문주왕을 보좌하고 南遷했던 목만치는 왜국으로 건너가 현지에 정착하여 왜왕권의 신료로서 봉사하면서 왜왕권의 친백제 외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아스카시대의 최대 호족으로 성장한 蘇我氏 가문을 창출하여 웅진기의 百濟一國外交의 시대를 열었다. 문주왕은 왜국에 체재하고 있던 昆支를 불러들여 내신좌평의 지위에 앉힌다. 친왜적인물의 등용은 대왜동맹 강화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왕권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다시 왜국 출생의 곤지의 아들 동성왕을 귀국시켜 백제왕으로 즉위시킨다. 동성왕의 귀국시 호위병으로 온 5백 명의 병력은 동성왕의 백제왕권을 안정시키는 전위대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동성왕의 뒤를 이은 무령왕은 웅진기의 백제중흥의 영주로서 고구려에 대항하면서 남으로는 섬진강수계를 따라 서부가야지역으로 경략해 나갔다. 기문, 대사, 임나4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편입하는 과정에서 物部連이 이끄는 왜병의 지원받았다. 웅진기의 백제의 대왜외교와 동맹체제는 이후 백제멸망과 망명집단의 왜국 정착과정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웅진기의 백제는 동아시아에서 왜왕권의 유일한 외교국이었으며 백제를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자원은 왜왕권의 발전에 커다란 근간이 되었다. 동시에 웅진기의 백제의 대왜 동맹은 백제왕권의 존립의 한 축으로서 작용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