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백제의 성씨(姓氏) 수용
2. 복성(複姓)의 유형(類型)
3. 백제왕권(百濟王權)과 성씨(姓氏)
맺음말
요약
삼국시대의 성씨는 왕실 및 귀족의 전유물로써 고대국가 지배층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체계이다. 그러나 백제는 이웃한 고구려․신라와는 다른 복성의 성씨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백제 복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지역명 성씨’는 백제사회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성기 성씨수용은 중국문화 수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중국문화는 313년 이후 낙랑․대방군에서 유입된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수용된 중국의 성씨 문화는 왕실과 정치조직을 변화시켰으며, 왕실이 부여씨라는 성씨를 칭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백제왕실이 사용한 부여씨는 왕실 출자의식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백제에서의 성씨 사용은 한성기 후반에 들어서면 매우 다양해진다.
하지만 백제에서 중국식의 성씨 문화를 수용하면서 왜 복성이 출현하였는지, 왕실이나 귀족층이 복성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백제의 복성은 크게 혈연적 출자를 표방하는 사례, 지연적 출자를 표방하는 사례 등 2가지로 범주화 할 수 있다. 백제의 모든 복성이 지역명에 기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명을 사용한 성씨가 백제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그 비중이 높았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된다.
백제 왕성 부여씨 외의 복성은 한성기 후반인 개로왕대부터 확인되는데, 이것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재지세력의 지연적 출자의식이 지역명의 복성으로 전환되는 계기는 한성기 말기에서 웅진기 초에 벌어진 정국의 불안정, 즉 백제 중앙권력의 쇠락과 재지세력의 부상이 맞물려 전개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백제의 지역명 복성은 백제 중앙과 재지세력의 특수한 관계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앙의 최상위 지배세력과 재지 유력자 세력이 서로 공존하는 백제의 지배구조가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상징하는 체계가 바로 각 지역명을 자신의 성씨로 표상하는 복성이며, 이는 지방 세력을 통섭하는 백제 중앙 부여씨를 정점으로 한 권력구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백제의 권력구조를 필자는 백제 중앙과 지방의 ‘공존구조’라 칭해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공존과 균형 구조에 균열이 사비기 후기에 일어났다. 무왕 및 의자왕은 새로운 중국계 유이민 세력을 편입시켜 균열을 일으키고, 또 일부 달솔 계층의 옹위를 받아 부여씨의 외연을 넓혀 기존 좌평체제를 흔들어보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존구조가 붕괴되고 일시적으로 왕권강화를 이루었지만, 이러한 새로운 권력구조 개편이 결국 백제의 멸망을 초래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