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문자기와의 출토현황
III. 문자기와의 기재 내용과 성격
IV. 맺음말 : 출토 자료의 의의
요약
본고는 금산 백령산성에서 출토된 문자기와를 소개하고, 그 내용과 성격을 검토하여 백제의 지방통치 체제와 연관된 문제를 분석하였다. 이곳에서는 「丙」, 「丙辰瓦栗峴々」, 「丁巳瓦耳淳辛」, 「耳淳辛戊午瓦」, 「上卩」, 「(上)水瓦」명 문자기와와 목간 등의 문자자료가 출토되었다. 그 중 문자기와들은 암키와와 수키와에 도장과 같은 것을 찍거나 날카로운 도구로 음각하여 쓴 두 종류가 확인된다. 문자는 없지만 함께 발견된 암키와․수키와의 문양이나 내면의 형태를 볼 때 이곳에서는 최소 9개 그룹의 기와가 공급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자기와의 내용은 干支와 地名으로 구성되는데, 「丙辰」년은 656년, 「丁巳」년은 657년, 「戊午」년은 658년으로 추정되며 신라와의 접경지대에 대한 방어의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경우 사비도성의 행정구역인 「上卩」과 백령산성 인근의 지명으로 생각되는 「栗峴々」, 「耳淳辛」, 「那魯城」등이 확인된다. 그중 「(上)水瓦」명 문자기와에는 「(上)水瓦」나 「夫瓦」라는 명칭이 확인되는데 이것은 백제 당시 암키와나 수키와의 호칭으로 생각된다. 이 문자기와는 那魯城에서 (上)水瓦 59, 夫瓦 95를 만들어 栢領山城에 받치면서 기록한 付札木簡과 같은 형식의 문서로 기와 자체에 進上狀과 같은 문장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령산성의 문자기와에서 확인되는 지명들은 소비지가 아니라 산성의 시설물 축조에 필요한 기와를 제작하여 공급한 제작지나 집단을 표기한 것으로 그 성격은 貢進物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금산 백령산성에 기와를 공급한 「栗峴々」이나 「耳淳辛」이라는 地名은 백제의 지방통체제인 方郡城 체제와는 다른 것으로, 나주 복암리 5호 목간의 「大祀村」의 존재나 신라의 사례를 참고할 때 「城」하부에 존재하던 자연 취락이나 지연 집단을 보여 주는 「촌」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