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성왕(聖王) 전반기 백제·고구려의 공방과 신라와의 동맹
Ⅲ. 550~551년 전투와 동맹의 실체
Ⅳ. 552년 고구려·신라 밀약설의 재검토
Ⅴ. 맺음말
요약
백제 성왕은 고구려의 공세를 막아내고, 가야세력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성왕은 공동의 적을 구체화하여 신라 혹은 가야와 왜 세력을 끌어들여 연합전선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이탈과 배반을 막고 전쟁을 통해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성왕은 541년 신라와의 동맹 이후 가야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대가야를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었고, 신라와 함께 고구려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게 되었다. 그것은 고구려 내부에 사정을 적극 활용한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신라의 도움 없이는 불가 능한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러한 백제의 한계를 간파한 신라는 백제에게 참전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백제는 550~551년 전역(戰役)의 결과로 얻은 상당 부분의 영토를 할양하게 된 것이다. 한편 544년 이래 성왕이 끊임없이 고구려와 신라의 공모를 언급한 것은 가야와 왜 세력을 영향권 아래 두려는 시도였다.
실제 551년까지 대고구려전에 신라가 포함된 연합군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이후 관산성 전투에도 가야와 왜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강유역 회복 후 백제가 한성 평양지역을 포기하고 왕녀를 시집보낸 일 등이 단순히 신라와 고구려의 밀약에 따른 후퇴라기보다는 동맹의 실체였던 것이다. 결국 관산성 전투는 주변 정세에 따라 신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공략하고 가야지역에 대한 우위를 차지한 후 신라에 대해 공세로 전환한 사건이었다. 그동안의 외교활동을 통해 대가야와 왜 연합군을 이루어 마침내 신라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한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