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王 · 侯制의 도입 시점
Ⅲ. 王 · 侯制의 도입 배경
Ⅳ. 王 · 侯制의 운영 체계와 정치적 의미
Ⅴ. 맺음말
요약
개로왕은 집권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백제 조정 내부의 혼란상을 유발하였던 유력 귀족 가문들의 전횡 및 왕위계승을 둘러싼 권력 투쟁 등의 과제들을 극복해야만 했다. 즉위 이후에도 그는 이 과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강력한 국왕 중심의 통치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였는데, 458년의 지방통치와 관련된 조치는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 중 하나로 활용되었다. 개로왕은 백제 세력권을 남북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좌우현왕과 그들의 통솔하에 분할된 군관구들에 대한 군사권을 행사하는 군관구장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인 왕족들로 채웠다. 이를 통해 개로왕은 자신의 측근 세력들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기존의 귀족 가문들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지방군 재편 등으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개로왕은 이후 백제 세력권 남부에 관심을 가졌다. 중앙의 통제가 강한 북부 힘만으로는 고구려와의 장기적 전쟁 수행에 한계가 있다고 파악한 그는 남부 지역이 백제 세력권의 배후지로 적극적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남부 토착세력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보유하며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이에 북위의 4등작제와 주제도를 백제의 현실에 맞게 변형하여 세력권 남부를 통치하는 도구로서의 왕·후제를 고안하였다.
개로왕은 백제 세력권 남부를 과거 한 내 소국에 기반을 둔 군 규모의 담로로 나눈 다음 각 담로로 해당 지역의 왕·후로 임명된 왕족들을 파견하였다. 왕·후들은 토착 세력의 보좌를 받아 담로를 통치하였다. 그리고 백제 세력권 남부에 분포된 담로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유사시 대비 목적에서 몇 개의 다로를 하나의 군관구로 묶었다, 군관구 내의 왕·후들은 군사적으로 군관구장 왕·후의 통제를 받아야 했는데 이때, 백제 고유의 관등과 장군호는 왕·후들의 지위를 정하여 군관구장 왕·후의 권위를 높이는데 이용되었다. 이같은 왕·후제는 충남 서해안 지역과 금강 이남 지역에 적용되었다. (맺음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