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元慶墓誌銘」은 백제 유민 묘지명으로 1960년에 中國 河南城 魯山縣 張店鄕 張飛溝村에서 출토되었다. 묘지명은 한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으나, 현재 묘지명이 출토된 노산현의 노산현문화관에 소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誌石에는 모두 836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난원경 집안의 종족과 성씨의 유래, 조상의 관력, 난원경의 생애, 관직과 활동, 사망시기와 葬地, 부인 등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20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내에 소개되었고, 묘지명의 전반적인 내용과 난원경 집안의 종족 문제가 주로 분석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기왕의 연구와 판독문을 토대로 묘지명의 판독과 역주를 수정·보완하면서, 주로 난원경의 조부인 難汗과 부친인 難武의 관력과 당의 백제고지 지배와의 관련성을 검토해 보았다. 묘지명에서는 난원경 선조의 활동 지역을 ‘遼’, ‘遼陽’으로 표기하였는데, 선조의 활동시기를 고려하였을 때, ‘遼’, ‘遼陽’은 웅진도독부가 교치된 建安古城보다는 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唐代의 고구려·백제 유민 묘지명에서 ‘遼’, ‘遼陽’ 등은 한반도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음도 고려되어야 한다. 난원경의 조부는 아마도 백제가 멸망하였을 때 入唐하여 扶餘隆이 熊津都督으로 임명되었을 무렵에 백제고지로 돌아와 당이 백제고지를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熊津都督府의 관료로 등용되어 활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