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唐歷史中,對於劉仁願其人的事跡,可能知道的人並不多. 他在海外奮戰數年,爲唐王朝開疆擴土建有相當的功勳. 但是,新‧舊唐書未爲其立傳,他的事跡只能從兩唐書劉仁軌傳及一些金石文資料中得其點滴. 盡管如此,劉仁軌傳中的有關記載仍有質疑探討的必要. 本文采用中‧韓‧日現存史料,對新‧舊唐書劉仁軌傳中的一些記載提出質疑,辯明劉仁願在百濟留守軍期間所任官職,並對劉仁願‧劉仁軌在百濟留守軍後期產生矛盾的原因諸問題提出看法,以期對此一時期唐與韓半島關系的硏究有所裨益.
초당 역사에서 유인원의 사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 수년 동안 전쟁에 참여하여 당조가 강역을 확장하는데 상당한 공훈을 세웠다. 그러나 『신당서』나 『구당서』에는 그의 전기가 없다. 아마도 그의 사적은 단지 두 당서 속 ‘유인궤전’과 일부 금석문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유인궤’전 속의 일부 기록은 의문스런 점이 있다. 본문은 중국, 한국, 일본에 현존하는 사료를 통해 『신당서』와 『구당서』의 ‘유인궤전’에 보이는 일부 기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유인원이 백제 유수군 시절 맡은 관직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유인원과 유인궤가 백제 유수군 후기에 모순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당과 한반도의 관계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