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Ⅱ. 統合의 시대 7세기
Ⅲ. 백제 문화의 국제성과 개방성
Ⅳ. 백제 음악의 대외교류
Ⅴ. 맺음말
요약
삼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물고 물리는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중국의 수․당 제국과 세력연합을 꾀하였고, 반면 수․당의 개입 여하에 따라 삼국간의 역관계가 크게 변화하는 새로운 국제관계가 전개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주목되는 변화는 왜의 대외정책 변화이다. 왜의 대외정책은 다변화의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고구려나 신라의 관계가 활발해진 반면 백제와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다소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에서 백제 음악인 미마지가 왜에 파견된 것이다.
백제 초기의 음악은 부여․고구려계의 지배층이 사용하는 북방계 음악과 마한 기층사회에서 통용되는 전통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백제 초기의 음악이 보다 체계화된 것은 4세기 후반 중국 송나라와의 교섭 관계를 가지면서부터이다. 백제 음악단이 송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궁중에서 활동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하여 청상악을 비롯한 중국 남조의 음악 문화가 본격적으로 백제에 전래되어 백제 음악이 보다 체계화될 수 있었다. 백제의 음악 관련 자료를 분석해 볼 때 鼓․角은 백제의 고유한 악기로 생각되고, 箜篌, 箏, 竽, 箎는 중국 남조의 청상악과 관련이 있으며, 笛은 서역에서 고구려를 거쳐 백제에 수용된 악기인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백제 음악은 백제 고유의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5세기 이후 중국 남조에서 수용된 청상악에 영향을 받았고, 때로는 서역계 음악이 고구려를 통해 백제에 수용됨으로써 백제 음악은 다양하고 국제성 있는 음악으로 체계화되어 발전해 나간 것으로 보았다.
612년 미마지가 왜에 기악을 전수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집권세력인 성덕태자(593~622)와 소아씨의 대백제정책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당시 성덕태자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불교의 진흥 등 내정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였고, 친백제노선을 수정하여 백제와 적대관계에 있던 신라는 물론 고구려, 수나라와 다원외교를 전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왜의 동향에 불안을 느낀 백제는 불교 이념의 보급과 확산, 그리고 국가 의례를 정비하고자 하는 성덕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불교와 음악을 통해 접근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았다. 618년 미마지를 통한 백제 기악의 전파는 백제와 왜 사이에 대두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에서 나온 외교적 타협의 산물로 보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