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가 최초로 도읍을 정한 곳은 慰禮忽이었다. 그리고 비류가 정도한 곳은 彌鄒忽이었다. 여기서 위례홀과 미추홀은 모두가 지명어미인 ‘홀’을 접미하고 있기 때문에 고유지명이었음이 틀림없다. 온조와 비류는 도읍지명을 그대로 국명으로 삼아 위례(홀)국 혹은 미추(홀)국이라 호칭하였을 것이다. 이 초기의 국호인 위례국은 개로왕대(서기 475)까지 호칭되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기가 증언하여 준다. 위례국의 위례는 ‘阿利․郁里’로도 이표기되었는데 그 의미는 ‘한’(大)이었다. 따라서 위례국은 곧 ‘漢國’(大國)이라는 뜻이다. 어느 시기엔가 국호가 十濟國으로 개칭되었다. 十濟는 once를 한자로 借字표기한 것이다. 이는 만주어 onco와 대응된다. 따라서 십제는 온세상, 온누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어느 시기엔가 십제에서 또다시 백제로 표기변화가 일어났다. on이 ‘十’의 개념에서 ‘百’의 개념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당연히 ‘十’을 버리고 ‘百’을 택하여 적게 된 것이다.
온조의 兄名(혹은 부족명)은 비류일 뿐이며, 비류는 松讓國의 별칭이기도 한 비류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온조는 그 작명의 유래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추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 의미는 초기의 왕명들이 누리, 누리 등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자연을 대상으로 한 어떤 상징적인 내용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즉, 큰누리, 한누리, 온누리, 넓은세상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인 어휘가 아니었나 의심하여 본다. ‘십제․백제’와 ‘온조’의 관계 역시 동일어에 대한 이표기 현상으로 추정한다. 즉, 온조는 백제왕이란 뜻일 뿐 개인명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