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馬韓의 形成
III. 馬韓의 中心勢力
IV. 準王의 南遷
V. 맺는 말
요약
문헌상 마한에 관한 몇 가지 문제, 즉 진국, 진왕, 목지국, 준왕의 남천문제 등을 연구사적인 관점에서 검토해 보았다. 이들에 대한 사료가 영세하고, 또 그나마 있는 기록들이 서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고 있어서, 학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일치된 견해가 없는 실정이다. 진왕과 진국과의 관련문제는 진왕을 진국의 왕으로 보는 견해와, 진국이란 다만 ‘古之辰國’이고 진왕은 대략 3세기 중엽의 일이라고 하여 진국과 진왕을 연결시키지 않는 견해, 그리고 고조선의 멸망에 따라 진왕이 삼한과 연관을 맺게 된다고 하는 등의 견해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진왕의 성격문제는 『삼국지』 마한조에서 목지국을 다스리는 진왕과 변진한조의 진왕, 그리고 『후한서』에서 모든 삼한지역을 다스렸다는 진왕에 대한 해석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차이는 각 시대의 역사상 차이를 보여준다는 관점에서, 두 사서의 진왕은 같은 것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성격이 변한 것으로 파악했다. 진왕이 다스렸다고 하는 목지국의 성격이나 위치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가 있다. 그 위치에 대해서 익산설, 공주설, 직산설, 익산주변설, 인천설, 예산설, 나주 반남면설 등으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몇가지 문제점이 남아있지만, 공주나 익산 일원에 목지국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지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정밀한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준왕의 남천문제도 마한 중심지의 위치비정이나 성격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하는 점에서, 예로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준왕의 남천지도 목지국의 위치 문제처럼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즉, 익산설, 공주설, 광주경안설, 직산설 등이다. 필자는 현재 구체적인 위치를 지적할 수는 없지만, 준왕의 남천 경로가 바닷길이었던 만큼, 바다와 인접해 있는 아산만유역에 준왕이 남천했다고 보고자 한다. 덧붙여, 필자는 선학들의 비정지가 당시 한반도에 있어서 선진적인 청동기문화가 발달했던 지역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정치집단들이 일찍부터 서북한지역과 빈번한 접촉을 했었다는 견해를 고려할 때, 비록 준왕세력은 아니라고 해도, 평양을 비롯한 북쪽에서 어떤 일단의 세력들이 이들 지역에 도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