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체 6년의 임나4현은 그 위치가 도왜지점인 부산의 낙동강 하구의 신라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곳이며 그 영역은 400년경 백제현의 평균면적보다 훨씬 작아진 것이 분명하고 인구규모는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나오는 나라 인구 규모로 볼 때 4현을 합친 소위 다리국이 600~700호의 인구집단 전후로 보아지나 이 부분은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므로 규정할 근거도 필요도 희박한 부분이다.
동래부지에는 부지 편찬 당시 하단에 448호가 있었고 사천면 하단에는 1165호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동래부지가 편찬된 것은 조선 영조 16년이며 사천면은 최근 사상면 사하면 및 부산시 서구 동구 일부가 포함된다, 따라서 그 위치와 영역을 기준으로 지명 비정에 있어 먼저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부산 지방일 수 밖에 없다. 본고에서는 당시 대세와 지리적 조건 및 기록의 재검에 의해 사현 위치의 절대성 및 영역 규모 등을 확인한 것이다.
낙동강 하구 지역이 당시 임나4현 소재지란 것은 흠명 원년조에 나오고 있다. 샇련중에 상다리와 하다리는 오늘날 동아대학이 자리한 승학산을 중심으로 남북의 지역으로 보이며 하다리는 오늘날 하단으로 비정하며 일제초기까지 항구로서 낙동강을 통해 수집한 물산들의 집적소 역할을 했고 조선말에는 구초량으로 불린 곳이다. 상다리는 승학산 북쪽 괘법동 일대의 오늘날 부산 서부 버스 터미널 일대로 본다. 따라 이 일대의 고지명이 상단이며 상하단을 합쳐 사천면이라 불렀다.
모루는 상단 즉 상다리인 괘법동 북쪽의 모라 즉, 모라도으로 그리고 사타는 모라동에서 낙동강 본류를 건너 보이는 삼각주상의 자연제방상의 부락이었던 부산시 강서구 대저면 사덕부락으로 비정하며 이곳은 금관국인 가락국의 건국초부터 칠점산 등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 사현은 낙동강 하구의 양안을 따라 분포하며 도왜항로의 기지로서 하구로부터 하다리=하단, 상다리=상단=괘법동일대, 모루=모라동 그리고 강 건너 사타=사덕으로 비정되어 연이어 나타나는 지역이며 모두 합쳐 대개 1개면 정도의 크기에 해당하는 배후지역을 갖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