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백제 멸망후 백제 고지에 당이 건립한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도독부 및 帶方州
二‧ 인덕2년(665) 8월 전 당나라가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도독부 및 帶方州를 합하여 웅진도독부 하나로 함
三‧ 『新舊唐書.百濟傳』웅진도독부 함락 관련 기사의 착오
四‧ 여론
요약
顯慶五年(660),唐朝在新羅導引下滅亡百濟,並在百濟故地設置熊津‧馬韓‧東明‧金連‧德安五都督府及帶方州. 後唐朝出於戰略考慮於麟德二年(665)八月前將熊津‧馬韓‧東明‧金連‧德安五都督府及帶方州合爲一個統一的熊津都督府,以原百濟太子扶餘隆爲統一的熊津都督府都督. 《新舊唐書.百濟傳》有關熊津都督府陷落記載過於簡略,其記載的熊津都督府都督扶餘隆"懼新羅,尋歸京師"或"畏眾攜散,亦歸京師"不符合歷史事實. 熊津都督府於672年五月前後被唐朝主動放棄,與扶餘隆無關.
현경5년 당은 신라의 인도 아래 백제를 멸망시킨 후 백제의 고지에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도독부와 대방주를 설치했다. 이후 당은 전략적 고려 아래 인덕2년 8월 전에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도독부와 대방주를 하나로 합하여 웅진도독부로 하였다. 그리고 백제 태자 부여융을 웅진도독부의 도독으로 삼았다. 『新舊唐書.百濟傳』의 웅진도독부 함락과 관련한 기사는 너무 간단한데, 웅진도독부 도독인 부여융이 "신라를 두려워해 도성으로 돌아오고자 했다"든가 혹은 "무리들이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역시 도성으로 돌아왔다" 등의 기사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웅진도독부는 672년 5월 전후에 당나라가 주동적으로 방치한 것이며, 부여융과는 무관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