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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도독부 함락 시말-나당전쟁의 폭발도 함께 논하다(熊津都督府陷落始末—兼論唐羅戰爭的爆發)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2010年 第2期
  • 저자 趙智濱(조지빈)
  • 발행일 2010.06.25.
  • 게재지 中國邊疆史地研究
  • 발행처 中國社會科學院中國邊疆史地研究所

목차

一‧ 나당전쟁의 폭발
二‧ 신라의 웅진도독부 진공과 당군의 도착
三‧ 당군 및 웅진도독부 백성들이 주도적으로 백제 고지에서 철수하다
四‧ 웅진도독부 함락 시간
五‧ 웅진도독부 함락의 원인

요약

唐與新羅聯手滅亡高句麗後,兩國因百濟故地控制權等問題矛盾激化,新羅利用唐軍主力被吐蕃牽制在西部戰場的良機,於咸亨元年至咸亨三年(670—672)不斷進攻唐熊津都督府. 出於國內政治及經濟需要,唐朝於咸亨三年五月前後主動將熊津都督府駐軍及當地百姓撤往內地,因之有關新羅於咸亨二年(671)奪占熊津都督府的說法不符合史實. 唐朝在唐羅熊津之戰中犯下了一連串的戰略‧戰術失誤,而沒有制定完善可行的整體戰略則是熊津都督府撤守的根本原因.
당과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양국은 백제 고지 통치문제를 둘러싸고 모순이 격화되었다. 신라는 당군의 주력이 토번을 견제하기 위해 서부전선으로 이동한 것을 기회로, 함형 원년에서 3년까지 지속적으로 웅진도독부를 공격했다. 국내 정치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당나라는 함형3년 5월 전후에 웅진도독부에 주둔하는 군대와 현지 백성들을 내지로 철수시킨다. 때문에 신라가 함형2년 웅진도독부를 뺏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당나라는 나당연합군에 의한 웅진 싸움에서 일련의 전략적‧전술적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완전한 총체적인 전략이 없었다는 점이 당이 웅진도독부에서 철수한 근본 원인이 될 것이다. (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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