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백제의 첫 조공과 동진 授官의 유래
二. 백제왕에 대한 남조의 授官과 백제의 천하질서 속의 위치
三. 백제“내속”과 백제국의 내부권력 구축에 대한 남조의 참여
四. 백제와 남조 동일한 문화적 세계를 함께 하다.
五. 백제와 동진‧남조 관계의 흥망성쇠
요약
在西晉大一統瓦解後各族紛紛建國的歷史態勢中,百濟的道路代表其中一個重要類型. 在"天下意識"下,百濟與東晉南朝在形式上構建統一的政治體系‧分享同一個文化世界. 百濟首次朝貢東晉便授官,這似與百濟‧夫餘間的歷史淵源有關,也是國際形勢變動及各自內政需求的結果. 自東晉起,對百濟王除授形成常例,基本上每任百濟王在即位之初便遣使東晉南朝,除授前王的官職. 5世紀起,尤其是東城王牟大"內屬",百濟內部官僚由百濟王假行職,再由南朝朝廷除正,也成慣例. 與宕昌王‧河南王相比,百濟王在吸收江左文化制度時受到特殊優待,這是基於彼此的文化認同與情感認同. 百濟對東晉南朝天下秩序的自覺參與,使其國勢盛衰也與江左王朝相應.
서진 이후 분열로 각 민족들이 국가를 수립하던 역사 환경 속에서 백제는중요한 유형을 대표한다. 천하의식 아래서 백제와 동진 및 남조는 형식적으로는 통일된 정치체계를 구축하고 동일한 문화세계를 공유했다. 백제가 처음 동진에 사신을 보내 관직을 제수 받는데, 이는 백제와 부여 사이의 역사적 연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국제 형세의 변동과 각자의 요구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진 때부터 백제왕에게 제수하는 것이 상례가 되고, 기본적으로 백제왕이 즉위 초에 사신을 동진과 남조에 보내 전왕의 관직을 제수 받았다. 5세기부터, 특히 동성왕 모대가 내속한다. 宕昌王‧河南王과 비교해 볼 때, 백제왕이 강좌의 문화제도를 흡수할 때는 특수 대우를 받았는데, 이는 서로의 문화적 인식이 동일하고 감정이 같았기 때문이다. 동진과 남조의 천하질서 속에 백제가 자진하여 참여하는데, 때문에 국력의 성쇠 역시 강좌 왕조와 상응하게 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