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삼국은 대립·항쟁에서 우위를 점하기위해 책봉체제를 이용하였고, 그 과정에서 중국가 왜를 끌어들여 이른바 책봉체제론이라는 역사인식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편 북위와 백제, 그 후에 수와 고구려, 백촌강 전투 후 당과 신라와 같이, 삼국과 종주국과의 충돌과 항쟁이 발생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책봉체제의 유지와 관계가 있고, 삼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간의 이해 얽혀있는 것이었다.
중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왜는 이러한 긴장 관계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7세기대 수와나 당과는 쌍방의 의식 차이가 있었다. 중국은 일본을 「朝貢國(조공국)」으로, 일본은 중국을 「隣對國(인대국)」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쌍방의 국제 의식이 서로 다른 상태로 국교가 성립되었다.
한반도 삼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책봉체제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나, 주관적으로 중국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쌍방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