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에 왜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던 것은 금석자료, 중국사료에서는 증명이 어렵고, 『일본서기』의 기재내용도 신뢰하기 어렵다. 다만 광개토대왕비에 의하면 백제와 연결된 왜왕권이 몇 번에 걸쳐 출병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5세기대에 고구려의 세력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미치고, 왜왕은 반고구려세력을 결집해서 대치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반도 남부 여러 지역을 실제로 지배한 것은 아니다.
왜왕권의 안라지역 진출이 백제의 진주에 의해 종결되고 백제는 가야의 맹주 지위를 장악했다. 백제가 맹주로서 주재한 회의가 이른바 ‘임나부흥회의’이다. 그 후 ‘在安羅倭臣(재안라왜신)’은 백제왕의 통제에 복속되어, 왜왕권의 파견군은 백제의 용병적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것은 『일본서기』편찬시에 8세기 율령국가의 신라번국관에 의해 과장되어, ‘임나일본부’의 존재나 왜왕권의 ‘관가’인 백제와 임나의 종속을 축으로 하는 허구의 사적구성이 성립된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