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서에서는 하내비조(河內飛鳥)의 주위를 安宿郡(안숙군)으로 기록하였다. 비조라는 지명은 좁은 뜻으로 하내의 志紀(지기)·古市(고시)방면과 南大和(남대화)를 연결하는 고대의 교통로를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 보통 나라시대의 아스카베군으로 인식하지만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아스카베군에 포함된 과거 國分村(국분촌), 玉手村(옥수촌)에 있었던 玉作部(옥작부), 飛鳥評(비조평)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지통 원년(645년) 경에는 비조에 마련된 관가인 評(평)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田邊史(전변사)씨족의 본거지로 생각되지만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씨족은 백제에서 도래했던 船史(선사)씨족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원래는 지기·고시 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있는 전변폐사지 인근 송악산에서 발견된 船王後墓誌(선왕후묘지)의 왕후는 王智仁(왕지인)의 손자로 641년에 사망, 668년에 송악산에 부인과 합장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장남의 무덤도 조영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641년에서 668년 사이에 이 가족의 장남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것을 의미하며 이는 田邊史(전변사) 씨족의 이주(642~645)와 같은 시기이다. 이를 통해 전변사는 선사에서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내비조의 중심씨족은 飛鳥戶造(비조호조)씨족이다. ?신찬성씨록?에는 이 성씨를 3개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는데 右京(우경)에 있던 씨족들은 안숙군 출신으로 京戶(경호)의 주민이 되었고, 안숙군 加美郷(가미향)에 다른 씨족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高安郡(고안군)으로 나누어진 비조호조씨족이라고 생각된다. 이 세 씨족은 각각 백제의 비유왕, 곤지왕, 말다왕(동성왕)을 시조로 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