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가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사료인 『日本書紀(일본서기)』 欽明紀(흠명기) 기사를 중심으로 백제의 가야지역 진출에 대해 검토하였다.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의 가야공격에 대해 구원병을 파견하거나, 가야와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비병을 상주시키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6세기 중엽경부터 백제는 가야지역에 대한 직접 지배를 시도하였다.
한편, 백제가 5세기 후반에 탐라국까지 복속했다는 기사는 탐라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에 해당하는 전라북도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己汶(기문)·帶沙(대사)를 섬진강유역의 가까운 곳으로 비정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으며, 그 위치는 북부가야지역이었던 낙동강유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백제가 기문·대사를 둘러싸고 伴跛(반파)와 대립했던 기사는 북부가야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