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있어서 삼국시대의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당연합군의 제1차 정벌에 의한 것이었다. 백제의 의자왕이 항복한 뒤에도 백제 의병이 각지에서 항전을 하였다. 일본에 질자(인질)로 왔던 백제 왕자 풍은 662년에 재흥을 위해 풍장왕으로서 주류성에 돌아가 일본에 응원군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패전과 유민의 일본망명이라고 하는 운명 앞에서 결정적인 대사건은 663년의 백촌강과 주류성 전쟁이었다. 즉, 제2차전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과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맞붙어 후자가 패한 것이다.
당군 진입 해역인 기벌포 및 백제 부흥전쟁의 백촌강(백강), 주류성의 위치 비정과 관련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주류성을 州柔, 疎留城, 都都岐留山으로 백촌강은 白村江으로 적고 있다. 신구 ?당서?에서는 주류성은 周留城으로 백촌강은 白江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는 주류성은 豆良尹城, 周留, 豆率城으로 백촌강은 白江, 白沙라고 적고 있다. 여러 견해를 검토한 결과 전영래의 동진강 하구에 백촌강과 기벌포가 있었으며, 현재의 변산반도인 개암사의 인근에 주류성이 있었다는 결론에 동의하게 되었다.
백제 유민의 일본 망명루트는 한반도 서남쪽의 보성만에서 대마도를 거쳐서 축자에 상륙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