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백제 사람들의 생활상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선 자리를 재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의복을 통해 백제 사회를 이해하려 한 첫 연구자는 李如星이다. 이여성의 연구는 문헌자료와 고고․민속자료를 총망라하여 복식 자료를 검출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고대사회를 복원․재조명하였다는 것이 특징이자 강점이다. 백제의 의복 내지 의생활 자체를 주제로 삼은 역사․고고학계의 연구도 있었다. 백제의 경우 의복보다 오히려 관모․관식에 관한 연구가 더 활기를 띠어왔다. 기존의 연구가 주로 웅진.사비시대에 한정되고, 그나마 官服 위주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성시대의 의복 내지 의생활 연구가 부진한 이유는 물론 극심한 자료부족 때문이지만, 웅진시대의 생활모습이 곧 한성시대에도 적용되리라는 막연한 믿음에 안주한 탓도 없지 않은 듯하다.
근래 각종 유적이 속속 발굴 조사되면서 백제인의 식생활과 관련된 자료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광주 신창동의 저습지 유적은 비록 한성백제와 시기․지역적으로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생활품이 출토되어 마한 및 백제의 생활상을 유추하는 데 귀중한 근거가 되고 있다. 또 풍납토성․몽촌토성을 비롯한 백제 유적에서 수습된 토기에 대해 천착한 연구성과가 나날이 쌓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고고자료를 백제의 생활문화 연구에 적극 이용하고, 나아가 발굴 과정에서도 이를 염두에 둔 세심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백제의 주거지는 평면이 「방형」․「凸자형」․「呂자형」인 원삼국시대 주거지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백제의 전형적인 육각형주거지로 변화하였다는 지적이 있다. 또 백제와 관련된 주거지는 대체로 지하 내지 반지하의 수혈주거지이지만 완전 지상식인 경우도 적지 않다 한편 백제의 취락 및 도로에 대한 연구도 아직은 未踏의 분야에 속한다. 풍납토성 내부에서 발견된 3중 환호도 백제 초기의 취락을 이해할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환호는 그 성격상 내구성이 약하고 방어기능이 취약하므로98) 높은 지대에 목책과 함께 설치하여야 방어시설로서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강안 평지에 조성된 풍납토성 내부의 3중 환호는 토성을 쌓기 이전 백제 사람들의 주거 방식․환경을 시사하는 귀중한 자료로서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