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간의 문물 교류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문물 교류의 과정은 경제 행위인 교역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겠지만, 파급 효과가 가장 큰 전쟁과 같은 수단을 통해 속도감 있게 전래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국가 간의 외교 관계를 통해 상층 문물이 전래되었고, 불교의 전래와 주민의 이동 등을 통해서 삼국간의 문화적 동질성이 서서히 조성되었다. 또 그로 인해 삼국시대 말기에는 중국으로부터 651년에 당고종이 백제 의자왕에게 보낸 국서에서 ‘海東三國’이라고 일컬어졌을 정도로 삼국은 문화 공동체로서의 동질성을 확립했던 것 같다. 이러한 문물 전래의 劃期를 굳이 지목한다면 고구려가 신라 영역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왕위 계승과 같은 사안에 간여하는 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400년에서부터 5세기 중반까지를 지목할 수 있다. 그리고 신라와 백제간의 나제동맹이 체결된 100여년에 걸쳐 양국간 주민의 내왕과 문물 교류가 활기를 띠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백제간 문물 교류의 큰 劃期는 이와 같이 설정할 수 있지만, 同源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시종 대립 관계가 基調를 이루었던 고구려와 백제간의 문물 교류는 다른 차원에서 검토해 보아야 할 사안인 것 같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