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Ⅱ. 백제 역사와 문화의 범위-고구려, 부여문화와의 계통적 관계
Ⅲ. 백제의 건국시점을 바라보는 관점-문헌기록의 선택
Ⅳ. 마한문화와의 관계 설정-소위 옹관묘문화와 조족문토기와의 관계
V. 고구려와의 국경문제-웅진시대의 한강유역 영유문제
Ⅵ. 가야ㆍ왜 문화와의 관계 설정
Ⅶ. 맺음말
요약
백제 역사와 문화의 복원을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백제사의 흐름을 개관하고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범위를 고구려와 부여와의 계통적 관계를 통해 살펴보면서 백제의 건국지인 한강유역도 고구려와 부여계의 문화전통이 이미 존재했던 지역이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음으로 백제의 건국시점에 대해 『삼국사기』와 『삼국지』의 기록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백제사가 700년이 될 수도 있고 400년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영산강유역의 옹관문화를 마한의 독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백제의 특질적인 지역문화의 한 갈래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조족문토기도 백제고유의 토기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웅진시대에도 한강유역을 고구려에게 완전히 빼앗기지 않았고, 고구려에게 한성과 그 이북지역을 빼앗긴 것은 성왕 7년(529)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웅진시대 백제의 공간적 범위는 한강유역과 경기남부지역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가야와 왜계 유물과 고분이 백제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백제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백제지역으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파악하였고, 가야와 왜계 문물의 백제지역으로의 진입은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백제사는 고구려와 부여의 문화전통을 이어받았지만 한반도 고대국가의 성립과 궤를 같이하며 한반도의 역사를 주도해왔고, 6세기 중엽 이후로는 신라와 경쟁하면서 성장해왔다. 더욱이 현재의 서울과 경기도, 충청과 호남지역 고대역사와 문화의 중심국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구려의 영토적 광대함과 신라에 의해 멸망한 역사적인 패자라는 위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었고, 급기야는 가야사 연구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은 백제가 동시대의 다른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매몰되어 가게 만들었다. 영토가 좁다고 국력이 약하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국가는 정체성이 부족한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연구가 진척되기를 바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