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낙랑 간독의 현황
III. 삼국 초기의 문자상황
IV. 한국 고대의 초기 목간문화
V. 맺음말
요약
한국의 木簡문화는 樂浪郡의 簡牘문화에서 기원하였다. 彩篋塚木牘,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한 論語 竹簡과 戶口簿 목독은 중국 漢代의 간독문화가 낙랑군에서도 그대로 향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자유물이다. 그러나 낙랑군의 간독문화는 중국 고대 專制國家의 역사적 산물이었기 때문에 고대 국가로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당시에는 고대 한국에 직접적으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이후 낙랑과 帶方郡을 비롯한 중국왕조와의 교류 속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순서로 -이는 고대국가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목간의 문화가 수용되어 전개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간독문화가 처음 도입되었던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북부 지역은 죽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나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목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향후 고대 한국에서 죽간이 사용되지 않고 목간이 사용되었던 이유였으며, 초기에 多面 및 圓柱形 목간이 많이 사용되었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죽간이 배제되면서 전개된 목간문화는 편철간이 아닌 단독간을 지향하면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7세기를 전후해 국가제도가 보다 성숙하면서는 다면목간 외에도 본고에서 살펴본 궁남지·쌍북리목간과 같은 整形化된 長方板形 목간을 활용한 문서목간의 형태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간문화는 일본의 목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