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百濟 初期史에 관한 《삼국사기》와 《삼국지》의 서술
Ⅲ. 《삼국지》의 史料的 가치와 그 성격
Ⅳ.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검토
Ⅴ. 최근의 한 견해에 대한 검토
Ⅵ. 《삼국사기》의 底本史書의 성격과 편찬
Ⅶ.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 백제본기 서술에 의하면 백제는 기원 전후 시기에 대영역을 확보하였거니와 3세기 중엽에는 율령제적 국가 단계였던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3세기 후반에 편찬된 단대사인 삼국지가 서술하고 있는 삼한의 실상과 너무도 차이가 많다. 이를 구명하기 위해 문헌과 고고학적 측면에서 양 사서의 내용을 비교 검토한 결과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 기록에는 후대 사실의 소급부회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삼국지 한조에 의하면 중국군현을 매개로하여 마한과의 정치 경제적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거니와 전쟁까지 치루기도 하였다. 삼국지 동이전의 주된 자료원이었던 중국군현은 적어도 경계를 접하고 있었거니와 이해관계가 가장 컸던 마한의 동태에 관해서는 소상히 파악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런 정보를 비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에 서술된 바와 같은 백제의 존재와 발전이 삼국지에 부각되지 않는 것은 고려할만한 일이다.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백제는 북쪽 경계가 패하였으므로 대방군과 경계를 접하고 대영역 국가였으므로 삼국지 동이전에 그 존재가 입전되지 않았다는 게 너무도 이상하다.
요컨대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 문제점은 결코 삼국지보다 사료로서의 저급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 그것이 지닌 진정한 의의가 있다. 삼국사기의 이런 서술은 그 저본사서로까지 소급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백제 왕실이 교체된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분열을 극복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백제의 당면한 정치현실에서는, 국가의 유구성과 왕통의 일관성을 선포하는 내용의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제왕권을 구축한 무왕대에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 지배체제의 확립 내지 정통성과 관련된 왕통을 비록 의제적이지만 온조, 비류 양계를 형제관계로 묶는 형식을 통해 단일하고도 일관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였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백제의 숙제로서 그 성립지이자 실지인 한수유역에 대한 영유권의 역사적 근거를 천명함으로서, 왕가와 왕역의 영속성을 보장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