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I. 고대 천문·기상 관측기술의 발달
II. 일관관계 사료의 해석
III. 고대의 점무속
IV. 일관의 사적 위치
맺는말
요약
한국고대사회에서 천체에 관한 과학적 측정과 이해가 완성된 시기는 8세기로 보며 그보다 3백여 년 전부터 꾸준한 발전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4,5세기 이전의 일관은 하나의 샤만으로 존재했던 것이며 이들의 위치가 국초에는 상대적으로 중요했던 것을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천체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아 삼국유사를 통하여 이를 고찰한다.
일관은 그 기능이 미분화된 원초적 샤만이 아니라 천문가와 탐색자의 역할만 행하는 샤만이며 천문가의 역할을 않는 대신 의사의 기능을 겸하는 巫와 구별된다. 샤만의 일반적 직능 중에 천문가로서의 기능을 보다 심화하고 인간의 실생활에 근접시켜 분화발전된 것이 기후샤만이며, 일관은 이 기후샤만 단계에 거의 도달한 자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험이 쌓여 실용화, 분업화된 분야를 샤만이 혼자 다 맡을 수 없을 때, 기후샤만은 더욱 세분되어 천문학 등을 분담하여 전문인, 직업인으로된다. 일관이 삼국시대 후기에 관부에 소속되어 실용적 역할을 하는 것은 시대에 따른 샤만의 자연적 추세라 할 것이다.
삼국사회가 불교 수용 후 일관의 존재양태는 일관 기사에 등장하는 승려가 액면 그대로 불승인지도 문제이지만 일관은 불교식의 변고 처리 혹은 불교의 권능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불교 또한 일관의 샤만적 권위를 박탈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일관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태양 내지는 하늘 숭배와 일관이 갖는 천계와의 의사소통에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나아가 일관을 기후샤만으로 볼 때, 샤만의 판단기준이 되는 영적 체험은 육체적으로 떪이 아니라 일월성진을 쳐다봄으로 해서 접신한다는 샤만의 경우를 적용한다. 어떻든 巫와는 접신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음직하나 더 이상 추론할 수 없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