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序言
二. 彌勒寺에 대한 文獻的考察
三. 百濟文化史上 彌勒思想의 位置
四. 百濟史에 있어 彌勒寺創建背의 文化的 意味
五. 結論
요약
백제불교는 미륵사상뿐 아니라 천태, 열반, 삼론 등의 교학연구에서도 힘썼으며 법화사상도 유행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 백제승 도장은 성실론을 연구하고 이를 일본에 전하였다고 한다. 성왕이후의 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면서 한편에서는 각 방면의 교의학의 연구도 성행하였다. 한편 이같은 불교를 일본에 전하는 등 높은 수준의 불교문화를 갖고 있었다. 본고에서 특히 미륵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됨은 연구의 주제가 미륵사라는 것뿐 아니라 백제미륵사상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백제에 있어 다른 불교사상은 귀족불교에 머물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반면 미륵사상이야 말고 백제 사회에 있어 기층문화와의 조절내지 극복을 통해 백제문화의 전통적 맥락을 보다 강하게 확립할 수 있었다고 주목하여 왔다. 미륵사의 창건은 그를 일러주는 것이다.
요컨대 미륵사는 율령사회하의 백제가 예와 율 유불일치사상에 의거 일찍이 미륵상생신앙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백제가 익산지역으로 진출하려 할 때에 일어난 문화운동으로 미륵하생신앙을 발전시켜 나감에 의하여 창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백제에 있어 미륵사의 경영은 신라에 있어 황룡사의 경영과 비교할 수 있다. 황룡사 경영이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은 누구나 안다. 백제의 미륵사도 율령사회가 요구하는 우너리로서 율과 예를 중시하는 백제문화전통의 미륵신앙적 전개로 경영되어졌다. 다만 백제사회가 사회경영의 불교사상적 원리를 보다 다원화하여 이를 조화하는 지혜를 찾지 못하고 율령사회->계율중시의 불교->미륵신앙의 전개 등에서 살필 수 있는 바와 같이 미륵사상 위주로 미륵사를 경영하는 대신 신라의 황룡은 사회운영의 불교사상적 원리를 밀교, 미륵, 화엄 등으로 보다 다원화하여 다시 이를 조화 극복해나가는 것이 다르다.
미륵사 창건은 귀족불교에 머물던 백제불교를 기층문화와 연결하여 이를 대중화하고 그렇게 함에 의하여 백제문화의 전통적 맥락을 보다 강하게 하였다는데 역사적 의미를 살필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