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마한영역에서의 백제불교의 수용이란 소도신앙의 토착적 기반 위에 백제불교가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고 수용된 백제불교의 성격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국읍과 별읍의 소도신앙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신앙의 대상이나 제사하는 형식에 있어서는 국읍의 제사가 훨씬 격이 높았다. 국읍 제례의 격이 높아진 것은 성읍국가단계에서 소국연맹단계로 사회적 발전에 있다. 사회발전의 단계가 소단위의 사회로 통합되어 가던 것과 같이 종교신앙 형태도 다신교적 형태에서 통합된 신앙 형태로 변한다. 삼국지의 소도관계기사는 마한이 정치적으로 소국연맹단계로 접어든 때를 배경으로 신앙에 변화가 생김을 일러준다. 이 변화는 국읍에서도 천군에 의해 천신에 제사지낸다고 하여 별읍에서의 소도신앙을 구분하는 것이다. 천신을 섬긴 성읍국가는 보다 많은 성읍국가를 아울러 소연맹을 형성할 수 있었으나 다신교적 제귀신을 섬기는데 머무른 성읍국가는 별읍에서 전단계의 신앙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국읍에서의 제사나 별읍에서의 제사가 따로 지내며 공존했다면 비록 천군에 의해 천신에 제사지내는 것이 별읍에서 제사지내는 형ㅌ보다 격이 높은 것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천군에 의해 별읍에서 제사지내는 일을 통합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삼국지 소도신앙에 양자의 공존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천군에 의하여 별읍에서의 모든 종교제례를 통합할 수 있게 되면 연맹왕국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한지역에서는 사회발전단계도 불확실하고 신앙형태 변화도 천군에 의해 천신에 제사지내는 형태 이후의 것을 전하는 자료가 없다. 그리하여 백제불교 수용의 성격을 구명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다행이도 익산 목지국설, 익산지방에 전하는 소도 신앙 흔적, 익산 미륵사 창건연기설화, 무왕 신이한 탄생 등에 얽힌 제신화적 요소 등은 천국에 의해 천신에게 제사지내는 마지막 단계에 있던 익산지방 천군이 제신을 통합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에 적극적으로 백제왕실이 대동해 나간데서 익산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이는 천신이 제신을 통합하는 단계에 수용된 불교는 모두가 미륵신아이었다는 데서 입증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