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신앙의 유형으로는 시조신앙, 제천신앙, 산신신앙, 국모신앙, 무속신앙 등이 있다. 백제에서는 시조신으로 동명과 구태를 받들었는데 구태묘의 제사는 동명묘의 배알과 달리 춘하추동의 사시에 행한 것으로 미루어 농경의례적인 이절제 행사가 아니었나 한다. 또한 동명묘 배알은 백제 왕의 지배권 유지에 필요하였으며 그 기능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새롭게 왕이 즉위한 후 시조인 동명에 대한 즉위의식이다. 하늘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하늘에 고하고 선포하는 의식으로 이때의 시기는 대부분이 왕즉위 2년 춘정월에 실시된다. 둘째, 동명묘에서의 기우제를 올린 것이다. 이는 천변에 대한 하늘의 노여움을 시조를 통해 해소시키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동명묘에서 왕이 관직의 임명을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왕은 시조, 나아가 하늘의 동의를 구하여 시조묘의 배알에 참여한 구성원에게 왕의 정치적 행위를 확인시키고 또한 정당화하였던 것이다.
제천신앙에 있어서 제천의 시기는 춘하추동의 계정이 별하는 달의 중간에서 행하는데 이는 지나가는 계절을 보냄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함에 경건함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제천의 기능은 첫째, 농경사회에서 필수적인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다. 계절제의 농경의례적인 것으로 하늘로 하여금 풍요하고 재악이 없도록 해달라는 기원과 한해의 풍작에 대한 감사의 기능이다. 이때 제천의식 방식은 군집하여 노래와 춤을 추며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노래와 춤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일뿐 아니라 신과 인간이 교제하는 종교적 기술이요 제의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시조묘의 배알에서와 같이 왕의 정치적 행위인 관직의 임명에 대하여 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기능이다.
산신신앙은 사국유사에서 제전에 든 삼산의 이름이 나오고 구당서에서의 산곡지신에 제사하였다는 내용에 그 유풍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온조왕대 묘를 세워 국모를 제사하였는데 이는 농경문화의 발전에 따라 강조되는 지모신으로의 역할이라 생각된다. 백제에서의 무속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삼국에서의 무인의 직능이 사제자 의무 예언자의 기능으로 구분되는데 백제에서는 예언자로서의 기능을 가진 무가 나오는데 후기에 오면서 사무로서의 역할이 감소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