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시대는 동아시아 격동기로 삼국의 항쟁뿐 아니라 수의 고구려 원정 등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 주목할 획을 그을 수 있는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율령제의 전제를 이루는 시대이며 국제적으로는 자주대등 평화외교를 구축하려고 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본고는 백제문화와의 사적맥락을 중심으로 종래 견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하고자 한 것으로 왜국에 있어 불교수용의 본질에 대한 것에는 더욱 음미해야할 약간의 문제가 있다. 백제로부터 왜국으로의 공식 전래연도에 관해서는 임신년설과 무오년설과 이를 절충해 무오년을 공식 전래년대로하고 임신년은 대왕이 예불의 가부를 군신에게 자문한 해로 보는 시각이 제기된다. 현재 일본학계에서는 무오년설이 유력하나 무시할 수 없는 무진년설이 있다. 이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명문을 통해 공식 전래년대를 무진년으로 추측하게 한다. 또한 무진년을 전후로 백제 승려 9명을 교체한 일본서기 기록이 있다. 따라서 불상, 경전의 전래도 주목해야겠지만 승려의 도래도 중요하다. 불교의 수용을 둘러싼 대립은 신라와 왜국에서 보여진다. 일본서기와 일본령이기 등의 사서에도 숭불과 배불의 항쟁이 있었음이 전해진다.
왜국으로의 불교전래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신라로부터도 전래하며 중국불교도 전래되었다. 아스카문화를 특징짓는 것은 불교문화뿐 아니라 백제로부터 오경박사의 도래와 아악의 전래, 나아가 삼국악 등 다방면에 미친다. 특히 빠질 수 없는 것은 백제로부터 도교의 유전이다. 일본서기 스이코천황 34년에 소아마자에 의한 이께노시마의 축조가 백제문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 방장선산을 흉내냈다고 기술한 것이 참고가 될 것이다.
쇼토쿠태자를 둘러싼 도래인 군상을 보더라도 백제, 신라, 고구려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는지 알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