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伽藍佛敎>와 <私宅佛敎>
II. 百濟의 佛敎-사원과 승려
III. 彌勒信仰-上生信仰과 下生信仰
IV. 두 개의 彌勒信仰-백제와 신라
V. 彌勒寺의 의미하는 사실
요약
고대국가에 있어 불교는 황제, 국왕의 소유이며 동시에 통치 대상이다. 다른 나라의 왕에게 불교를 하사, 증여하는 일에 있어서 불교를 소유하는 황제, 국왕의 의지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가람불교이다. 일본에 있어서 불교의 공식전래 이전에 큐슈 북부에 사택불교가 전래되었다. 황제, 국왕에서 국왕, 천황으로 전해지는 가람불교와 구분되는 것이며 재력이나 권력이 부족한 일개인에 의해 성립된다.
백제 사원이 국도에 존재하는 반면 지방에 분포하지 않는 것은 백제불교가 지방 민중층까지 확산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즉, 백제불교는 귀족불교이지 민중불교는 아니었다. 반면 신라의 사원은 경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분포하며 불교의 신라화의 중추적 핵은 미륵신앙이다. 미륵신앙은 미륵이 사는 도솔천으로 상생하는 것을 염원하는 상생신앙과 도솔천으로부터 인간세계로 하생한 미륵의 교화를 받는 것을 바라는 하생신앙이 있다. 상생신앙은 도솔천으로 상생을 바라는 이가 여러 악을 지었다고 해도 미륵의 이름을 듣고 참회하고 미륵의 이름을 부르면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다. 미륵을 도솔천에 상생한 사람이 미륵을 따라 하생하고 용화삼회와 연을 맺을 수 있다. 하생신앙은 미래세에 있어 용화삼회와 결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염부제에 하생한 미륵이 출가, 입사하기 전 오욕에 의해 근심에 이르고 생사에 침급하는 중생을 연민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반가사유상의 원형은 젊은 시절의 싣타르타태자에서 구하여진다. 그런데 일생보처의 보살로 여겨지는 미륵이 출가학도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반가사유상으로 표현해도 이상하진 않다. 과거불인 석가도 미래불인 미륵도 인생 문제에 대해 고뇌 번민의 공통이 있기 때문이다. 미륵신앙에 비중을 높게 두는 반가사유상이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조상되었다. 신라에서는 화랑과 겹쳐 출현한 미륵=반가사유상신앙이 민중 가운데 퍼쳐 화랑=미륵신앙 같은 신자집단이 각지에 형성되었다. 이는 미륵하생신앙에 의해 불교의 신라와, 민중화가 이루어진 것을 뜻한다. 백제의 미륵신앙을 표현하는 것은 익산 미륵사이다.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은 석가 입멸 후 56억만년을 지나 용화삼회, 즉 일생보처의 보살인 미륵이 정각을 성취해 여래=불이 되고 그의 입멸 뒤, 중생 구제를 위한 설법 회좌에 결연함에 있었다. 미륵사 창건은 무왕 부인의 발원에 의한 것이며 무왕이 이를 달성했다. 결국 백제 미륵신앙은 귀족불교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