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백제부흥운동에 앞장서서 참여한 승려 도침의 생애와 부흥활동에 대한 규명을 통해 역사적 의의를 도출하고자 한 것이다.
도침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은 불교이며 가운데에서도 법화사상이 그의 사상적 근간이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법화사상이 대승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전 그가 거주하고 있던 근거지는 군사적지명이 붙은 군수리사지로 추정한다. 승려생활을 통해 승려 간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군부계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기에 백제멸망 직후부터 주류성을 근거로 많은 군중들이 모여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것으로 믿어진다. 661년 3월 도침은 임존성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복신과 흑치장시 등도 이곳에 집결하여 장기전에 돌입했다. 도침은 영군장군, 복신은 상잠장군이 되어 도침이 부흥운동군의 총사가 되었다. 이는 그간의 전적과 사람됨을 감안한 민심의 귀결로 주어진 직책일 것이다.
백제 멸망 직후 9월에 승려 각종이 일본에 건너가 백제 멸망 사실과 복신의 부흥활동을 알렸는데 이는 구원 요청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도침과 연계하여 도일했을 것으로 보이며 도침이 군사행위 벌이기 이전이므로 복신의 부흥활동만 알리고 도침의 부흥활동상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은 것 같다. 왕족이면서 지위도 높은 복신이 도침보다는 일본에게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부흥군의 총수가 된 도침은 복신에게 살해됐다. 복신은 부흥운동 말기에 풍왕을 살해하고 전권 장악을 시도하다 도리어 풍에게 살해된 것을 볼 때 자신의 정적인 도침을 살해하고 만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왕족인 복신이 일개 승려인 도침 휘하에 있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도하던 승려인 도침은 적수공권으로 구국운동에 나섰다 살해됐으나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 이 부흥운동은 한국역사상 승전사의 효사가 되었으며 그 정신은 고려, 조산시대까지 계승되는 호국항쟁을 가져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