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유학사상은 북방계의 強建性과 남방계의 柔順性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시대가 지남에 따라 북방계의 強建性은 점차 퇴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유학사상을 무엇보다도 漢代儒學風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주로 漢代經學사상과 陰陽五行사상이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6좌평제도라든지 『周書』에 기록된 法禁, 그리고 南堂제도등을 통해서도 당시 백제유학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三國史記』에 나타난 역대 왕들의 記事에서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삶과 고통을 우려하는 愛民의식과 民本정치를 볼 수 있으니 이는 유교의 王道정치사상과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속에 유교적인 윤리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조 東明王에 대한 제사라든지, 法禁에 나타난 3년상의 생활화라든지, 都彌夫人의 貞節의식에서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백제 멸망시 충신 成忠, 興首의 諫言과 忠節 그리고 階伯과 궁녀들의 처세를 통해 당시 유교적 윤리의 수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구나 백제의 수준높은 문화는 넘쳐 흘러서 일본에 까지 전파되었음을 일본문헌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백제의 사상적 상황은 주로 유교와 불교가 중심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제는 불교보다 유교가 중심에 자리했던 것이다. 따라서 유교의 忠節義理정신이나 貞節의식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전승되어 현대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의 유학사상 내지 백제정신은 역사적 유물이나 回顧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적 삶으로 실천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간다운 良心을 지키며 사는 것, 부정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것, 예의와 염치를 지키며 생활하는 것, 대인관계에서의 일상적 윤리를 실천하는 것, 투철한 국가관으로 애국심을 생활화하는 것이야말로 백제의 유학정신을 현대에 계승 발전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