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任那의 위치·강역과 他國와의 地理的 거리
Ⅲ. 大和倭와 政治的·軍事的·技術的 水準과 吉備倭의 國力
Ⅳ. 任那에서의 百濟·新羅·高句麗 3國과 大和倭·吉備倭 2國과의 關係
Ⅴ. 맺는 말
요약
任那의 위치·강역과 인접 5國과의 關係를 살폈다. 또한 대화왜와 길비왜의 제반 저치적 성격을 살펴 임나와 인접 5국의 관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일본서기 임나 관계기사의 한반도 제국 중심기사와 대화왜 중심기사 중에 후자는 허구임이 판명된다.
가야는 대마도에 존재하며 임나와 관련된 백제, 신라, 고구려도 임나와 같이 대마도에 존재하는 불가국가이며 이들 국가간의 경계선은 동일부락 내에 있거나 인접한 부락과 부락의 사이가 국경선이며 주로 경작지 쟁탈로 인해 싸움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를 일본서기에서 수만 또는 수천의 군사가 동원된 대국간의 전쟁으로 묘사했다.
임나는 느슨하지만 총 10여 개 부락으로 구성되며 임나의 일부는 대마도에 있고 임나와 인접한 백제와 신라에 의해 지배되는 독립국이다.
일본이란 명칭은 670년 이후에 출현했으므로 그 이전 시기의 일본부라는 명칭 존재는 허구이다. 이를 인정한다하더라도 일본부는 임나 소속 10개 국 가운데 안라에만 존재하며 이는 백제가 대화왜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중간연락처의 성격을 띤다.
임나가 가야라는 기사나 임나일본부가 임나를 통제, 지배했다는 기사는 일본서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백제가 임나와 임나일본부를 통제한 기사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학계는 이를 위장하고 한국학계는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려하지 않는다.
비후왜, 대화왜, 길비왜, 임나가 모두 백제에 복속된 백제의 직할영토라는 점, 백제의 관위를 가진 비후왜의 왕자가 백제 지시에 의해 대화왜를 지도한 점, 임나의 사인이 대화왜에서 신라의 사인이나 당나라 사인처럼 대접바는 점, 임나 제국 대표와 일본부의 관인이 모두 백제 관위를 사용하는 점 등에 유의한다면 길비왜나 대화왜가 그러한 임나에 어떤 독자적 정치조직을 설치할 수 없으며 있다하더라도 그들의 종주국이 백제와의 정치적 연락을 더욱 긴밀히 하기 위한 연락처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임나일본부가 가야 내지 남한을 지배, 통치했다는 일인들의 강한 주장들이 점차 약화되고 다양해지나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남한에 일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고수하고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