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무왕대의 대왜관계
1. 왜의 대수접근과 백제의 견제
2. 왕자 풍장의 왜로의 파견
III. 의자왕대의 대왜관계
1. 의자왕 초기의 정변과 대왜관계 냉각
2. 부여풍의 파견과 왜와의 화호
IV. 백제부흥군의 대왜관계
1. 부흥군의 부여풍 옹립
2. 왜의 부흥군 지원과 그 배경
요약
필자는 7세기 백제와 왜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가를 무령대의 대왜정책, 의자왕대의 대왜정책, 백제부흥군의 대왜정책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7세기에 倭에서는 推古가 즉위하여 聖德태자가 實權을 장악하고 있었다. 성덕태자는 왜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隋와의 접촉을 도모하면서 백제에 대해서는 종래보다는 疎遠한입장을 취하였다. 왜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백제를 자극하게 되고 그 결과 백제는 수에서 귀국하는 왜의 사신을 劫掠하여 사신이 소지한 隋의 國書를 약탈하였다. 이는 왜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에 대한 백제의 강력한 경고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양국사이에 조성된 긴장관계는 무왕 후기로 들어가면서 점차 회복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당의 한반도 정책이 친신라쪽으로 기울어지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가 對倭접근을 추진하게 되면서 나오게 되었다. 무왕은 지배세력들간의 갈등도 조정하고 또 倭조정내에서 親백제세력을 재건하여 왜와의 관계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왕자 農璋을 왜로 파견하였다. 그 결과 백제와 왜와의 善隣관계는 무왕 말기까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의자왕의 즉위를 전후하여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의자왕은 즉위 후 親衛정변을 단행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弟王子의 아들 翹岐를 비롯하여 內佐平岐味등 수십명의 高名之人들이 대거 추방되었다. 그런데 백제에서 추방된 이 교기를 왜의 실권자인 蘇我蝦夷大臣이 영입하여 우대하였다. 추방된 교기를 왜 조정이 영입하였다는 것은 의자왕으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의자왕은 大佐平沙宅智積을 파견하여 왜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하였으나 왜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 실패하였다. 그 결과 백제와 왜와의 관계는 공적인 교역관계가 줄어드는 등 긴장관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와 당의 관계가 보다 밀접하게 되자 의자왕은 이러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가 위해 대왜관계를 새로이 정립하려고 하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자왕은 왕자 夫餘豊을 왜에 파견하였고, 《三國史記》백제본기 의자왕13년조에 “王與倭國通好”라 한 것에서 보듯이 왜와의 우호관계가 맺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우호관계는 멸망시까지 지속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