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大通寺에 대한 기존의 견해
1. 창건연대와 목적
2. '大通'銘 기와의 편년
III. 聖王代 大通寺 창건
1. '大通'의 의미
2. 興輪寺와 謙益
3. 法華思想과 大通佛
4. 聖王系의 神聖性 高揚
IV. 맺음말
요약
대통사의 창건시기와 창건목적을 살펴보았다. 대통사의 창건시기는 성왕대이지만 사비천도 이후 위덕왕, 법왕대의 불교도 아울러 검토하였다.
기존에 대통사의 창건연대를 527년으로 본 것은 大通을 527-529년까지 사용한 중국 남조 양나라 무제의 年號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통사의 창건목적을 양무제를 위해서라고만 보았다. 그러나 大通이 모두 연호로 쓰인 것은 아니다. 그 근거로 523년 양무제가 발행한 大通錢을 강조하였다.
성왕대 대통사의 창건목적은 돌아간 부왕인 무령왕의 명복을 빌고 다음 왕위를 이어갈 여창[위덕왕]을 위해서였다. 창건시기는 창건목적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525년으로 추정해 보았다. 대통사란 절이름은 ‘大通’이 의미하는 좋은 의미를 포함하여 『법화경』화성 유품에 등장하는 大通佛[大通智勝如來]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았다.『법화경』 대통불의 아버지는 轉輪聖王이었고 아들은 釋迦牟尼佛이었다. 전륜성왕으로 자처한 성왕은 아들을 대통불에 비기었다.
성왕은 『법화경』의 전륜성왕-대통불-석가모니불에 이르는 부처의 가계를 빌려와 왕실, 구체적으로 성왕계의 신성성을 고양시키려 하였다. 성왕의 이러한 의도는 이후 위덕왕, 법왕 등 성왕 자신의 아들, 손자들에게 이어졌다. 즉 아들인 위덕왕은 출가를 결심하기도 하였고 손자인 법왕은 王興寺를 창건하여 釋迦牟尼佛을 주존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성왕은 대통사 창건을 통하여 붓다의 권위를 빌려왔으며 이를 통하여 정치제도의 정비, 사비천도의 단행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필자 맺음말)